회사 지원하는 한국인과 영어권의 태도 차이

회사 채용 공고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지원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겪는다.

거꾸로 제대로 읽기만 했어도 다른 스펙과 관계없이 뽑아줘야 되는거 아니냐는 생각도 해야될 정도로 제대로 읽는 경우가 거의 없다.

회사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강점이 있는데,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만 잔뜩 써 놓은 이력서, 자기 소개서만 받을 뿐,

그 회사에 자기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고, 자기 인생의 목표에 어떻게 연결이 되어 있는지 같은 내용을 보기는 쉽지 않다.

 

일부러 채용하면서 소개 문구 안에 반드시 뭘 해라고 집어넣는 방식으로 채용공고를 바꿔 써 봤는데,

영어 강사 뽑을 때, 해외 법인에서 채용할 때, 그리고 일반 한국인들이 지원할 때 큰 차이가 있는 걸 본다.

영어 강사는 SIAI 졸업 요건인 TOEFL 점수 대체 수업용, 해외 법인은 SIAI 운영 담당 스위스인,

그리고 Pabii에서 뽑은 개발자, 디자이너, 기자, 홍보 관계자 등등이 오늘 글의 비교 군이다.

본의 아니게 사회 실험처럼 되어버리기는 했는데, 양쪽 문화권에서 정말 두드러진 차이가 난다.

 

먼저, 채용 소개 문구 안에 어느어느 부분을 읽고 지원서 안에, 지원 메일 안에 무슨 무슨 말을 반드시 집어넣어라고 써 넣는다.

한국에서는 X코리아 같은데는 단순히 글만 써 놓고, 알바X 같은데는 지원자용 필수 질문을 몇 개 넣을 수 있길래 추가해놨었다.

 

영어권에서는 그 직업이 영어 강사건 현지 리모트 관리 직원이건 관계없이,

10명 중 9명 정도가 지원 메일 안에 쓰라고 하는 말을 반드시 집어넣어서 지원서를 보낸다.

Resume는 동일한 걸 쓰는 것 같지만, Cover letter를 따로 쓰는 경우나, 이메일을 Cover letter로 대체하는 경우 어느 쪽을 봐도

SIAI라고 하는 교육/연구 기관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찾아본 부분이 담겨있고,

많은 경우에는 최소한이 아니라 상당한 배경 지식을 갖춘 티를 팍팍내며 Cover letter를 써 놨다.

 

단, 한국에 오래 살았던 영어 강사들은 자기가 대기업에 영어 강사했던 경력자라는, 자기 이야기만 잔뜩 써 놓은 경우가 종종있었고,

그게 10명 1.x명이라 전체의 85~90% 정도로 저 비중을 낮추는데 큰 몫을 했다.

 

한국인들에게 지원서를 받는 경우로 시선을 돌려보면, X코리아로 지원하는 경우에는 평소 다른 인연으로 회사를 잘 아는 케이스가 아니면

요구하는 정보를 지원서에 넣거나 이메일로 보내는 경우는 정말 10명 중에 1명도 안 된다.

회사가 더 커지면 달라지지 않겠냐, 연봉을 빵빵하게 주면 달라지지 않겠냐는 반박성 질문도 많이 듣는데,

최소한 연봉은 7~8천만원으로까지는 실험해봤었다.

한국 사회에서 연봉 7~8천만원이면 아무리 낮춰 잡아도 상위 10% 급여자인데, 이 정도면 상당한 사회적 실험이 됐다고 생각한다.

 

알바X에는 강제로 2~3개의 필수 질문을 넣을 수 있어 답변을 받기는 하는데, 이것도 정답률이 50% 남짓이다.

글 하나를 읽고 8X, 1Y, Z, Q (영문자는 실제 숫자 변환)이라는 값을 입력해야하는 질문이 하나 있는데,

지원자의 학벌, 경력, 배경 지식 등등 뿐만 아니라, 알바의 종류와 급여 내용 등이 달라져도 정답률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3줄 요약만 읽는 한국인, 외부자료까지 꼼꼼하게 다 찾아보는 서양인

왜 이렇게 됐을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한국의 기업 공고에는 그렇게 꼼꼼하게 읽어야 되는 내용이 별로 없고, 그저 스펙만 좋으면 되고,

서양의 기업 공고들은 꼼꼼하게 읽어야 되는 내용이 많아서 일까?

 

글쎄다. 공고만 꼼꼼하게 읽고 끝나는게 아니라 기업 홈페이지와 그 외 각종 자료를 다 찾아보던데?

한국은 스펙과 관계없이 ‘자기 소개서’에 정말 자기 이야기만 잔뜩 써 놨던데?

 

단순히 직장 구직하는 문화만 이런게 아니라, 사람들 행동 양식 자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박사 유학 중 우리 단과대 학생회에서 시상식을 해야 되는 일이 있었다.

학생회 예산으로 트로피를 만드는데, 좀 거리가 있는 곳에 부탁을 해야되길래 아무도 안 나서는 상황이라,

이런거라도 해야지 학생회에 좀 덜 미안하지라는 생각에 자원하고 나선 적이 있다.

차로 20분 정도를 달려 나간 어느 교외의 상가 컴플렉스의 어느 한 부스를 찾아가서 학교 단과대 이름의 트로피를 주문하니,

너 같은 동양인이 그런 학교 이름 붙은 트로피를 주문할 리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한테 증명을 요구하더라.

졸지에 그 자리에서 학생증, 그간 주고받은 이메일, 내가 담당자라는걸 확인할 수 있는 기타 서류들을 보여줬는데,

내 눈 앞에서 학교 홈페이지까지 들어가서 이것저것 다 확인하는게 좀 화도나고 늦어지니 짜증도 나고 그렇더라.

그렇게 꼼꼼하게 다 확인하고 나더니 새겨지는 글씨 폰트, 들어가는 사람들 Full name 같은 내용도 다 확인하고,

2개 만드는 트로피 중 하나가 놓이는 위치 사진까지 확인하고는 학생용, 디스플레이용을 구분해서 만들어주더라.

 

뭔 이런 시골 외딴 마을에까지 와서 고작 작은 트로피 2개 주문하는걸로 이렇게까지 시간을 썼나 싶었는데,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저런 꼼꼼함이 ‘방망이 깎던 노인’의 서양 버전 아니겠나 싶어 한편으로는 미안하더라.

 

나 스스로도 꼼꼼하게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일 하는 종류의 인간형이 아니라 종종 뒷수습에 힘든 일이 많으니까

‘헬조선’형의 인간이라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지원하는 회사에서 최소한 몇 달, 길면 몇 년간 한솥밥을 먹어야 되는데,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대충 쓱쓱 찾아보고 지원하는 분들이

과연 얼마나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을까는 의문에 긍정적인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사람을 뽑아놓고 나면 자주 듣는 이야기가,

  • 아무 생각없이 왔는데, 와 보니 나만 잘 하면 엄청나게 좋을 것 같다
  • 근데 대표님 눈 높이 맞추는게 진짜 어려울 것 같다

같은 내용인데, ‘아무 생각없이 왔는데’라는 저 문구를 들을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저런 애들이나 뽑고 있어야 되는….ㅆ… 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거든.

 

회사가 커지고 명성이 높아진다고 해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걸 이미 첫 직장을 갔던 2008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는 하지만,

월급을 주는 사람 입장이 되니 저런 일을 겪을 때마다 사람 뽑기가 망설여지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동질적인(Homogeneous) 사회 vs. 이질적인(Heterogenous) 사회

내가 요즘 얻은 결론은, 한국 사회가 굉장히 동질적인 문화가 강한, 남들이 하는대로 따라하는 종류의 사회인 반면,

서구 문화는 자기들 방식이 모두 다 다른, 개인 or 조직의 독특함이 잘 살아있는 사회이기 때문이 아닐까는 이론이다.

더 밑바탕에는 옆집이나 우리집이나 모두 농사 짓고 있던 문화와, 무리지어 사냥하러 돌아다니던 문화적 배경 차이가 깔려 있겠지.

 

어차피 어느 직장을 가나 ‘도긴개긴’이기 때문에 연봉, 사무실 위치 이런거만 대충 적당히 보고 지원해도 큰 차이가 없는 문화와

회사마다 문화가 제각각이고 하는 일도 다들 조금씩 달라서 내 커리어 설계를 잘 하지 않으면 인생이 꼬이는 문화가 주류인 곳에서

각각 다른 적응 패턴이 나오는 것이 한국과 서양의 구직 문화 차이를 낳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우리 조직에 길게 있는 친구들이 항상 하는 말이 ‘이런 곳을 찾게 되어 다행이다’ 같은 표현인데,

본인이 열심히 ‘검색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는데 ‘운이 좋았다’는 표현으로 바꿔서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좀 더 비판적인 수위를 높이면,

한국 사회는 굉장히 심하게 ‘일반론’이 지배하는 사회, 단순하게 남을 따라가는 행동 패턴만 남은 사회가 됐기 때문에,

내부 동력으로는 ‘개혁’, ‘변화’, ‘도전’ 같은 것을 할 수 없는 사회가 됐다.

2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의 후보 수락 연설에 ‘저희 어머니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게 한국 사회의 생존 방식이 된 것이다.

 

세상 어디를 가나 기업들이 자기네가 원하는 인재를 못 뽑아서 힘들겠지만,

여기까지 결론을 얻고 나니 한국에 내가 원하는 인재는 연봉, 회사 명성 같은 차원을 넘어,

아예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걱정? 우려?가 떠나질 않는다.

애초에 한국인 뽑아서 하는 사업은 그저 생각없이 돌아가는 막노동?이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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