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남겨야 하는 직원 vs. 잘라야 하는 직원

박사 연구실 시절의 일이다.

다음날 제출해야 되는 과제가 있는데, 밤 11시가 되도록 도저히 못 풀겠더라.

며칠 동안 자정 전에 집에 가 본 적이 없어서 그날은 꼭 그 문제를 풀고 일찍 집에 갈려고 그러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문제를 잘못 냈다는 확신이 들어서, 안 된다는 증명 Latex과 매우 정중한 이메일에 1시간을 투자해 밤 12시쯤에 메일을 보냈다.

보낸 메일을 다시 읽으며 혹시 표현이 잘못되진 않았나 조심조심하며 화면을 바라보는 와중에 짐을 싸는데,

갑자기 답장 이메일이 바로 딱 오더라.

5분도 안 되어서 매우 장문의 Latex으로 내 증명이 왜 잘못되었는지 지적과 함께.

 

혹시나 싶어서 교수님 방 쪽으로 슬쩍 가보니 아직 불이 켜져 있는게, 도저히 눈치가 보여서 집에 못 가겠더라.

아니 그렇게 긴 Latex 문서를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다 쳤다고?

누가 나랑 비슷한 바보스러운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그게 가능할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시절이 어느덧 10년 전의 과거가 된 요즘의 나도 비슷한 경험을 종종 겪는다ㅋㅋ

잘 아는 내용에 한정해서 어이없는 질문이 날아오면 총알 답장이 나오더라고ㅋ

 

비슷한 경험을 실리콘 밸리 직장들에서도 보고 들었는데,

다들 저녁이 있는 삶이 중요하다는 회사 분위기에 따라 6시 좀 넘으면 사무실에 안 보인다.

근데, 저녁 먹고 집에와서 컴퓨터 켜고 사내 메신저를 열어보면 다들 메신저가 켜져 있더라.

혹시나 싶어서 간단한 질문을 보내면 바로 답이 오고, 큰 질문을 던지면 아침에 뭔가 답을 던져준다.

밤새 손은 일을 안 했을지 몰라도 머리는 무조건 일을 했다는 뜻이다.

 

뱅킹 시절엔 아예 집에 못 가는게 당연하고, 고객 접대 나가서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셔야 겨우 새벽에라도 집에 가던 걸 생각하고,

처음엔 연구실, 사무실에 남아야 된다는 압박이 없는 문화가 완전 좋은거 아닌가는 생각을 했었다.

근데, 두뇌 역량이 남들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나지 않는 이상 결국은 시간을 투입해야 살아남고 승진하는건 이쪽 동네도 마찬가지라는걸 그 시절에 보고 느꼈다.

남겨야 하는 직원, 잡아야 하는 직원

요즘 회사 내부 사정으로 리모트로 일하는 직원들을 대규모로 뽑았다.

제대로 일을 하는지 감시할 수가 없어서 좀 찜찜하고, 대면으로 오더가 나가질 않고 타이핑을 하려니 시간이 많이 걸려 불편한데,

그래도 결과물이 엉망으로 나오면 바로바로 확인이 되어서 타협하고 있는 중이다.

좀 성과가 안 나오면 예전엔 많이 기다려줬지만 요샌 딱딱 잘라버리는데,

예상대로 욕하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이 생기는 부작용을 겪기는 했지만 그래도 남은 인력들은 내 생각을 이해해주는 것 같아서 고마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리모트 직원 관리를 하는 중이다.

 

그 중 한 분이 좀 더 책임이 많은 업무를 도전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본인 역량이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인지하고는 계속 노력하는게 보여서 속으로 조용히 응원하고 있다.

이번에 시스템을 한번 개편하면서 업무 변동이 좀 있을 예정인데, 하고 싶은 업무를 또 한번 어필하시더라.

실력이 많이 붙었으니 한번 도전해보자고 답장을 드렸는데,

 

저 분만 저렇게 열정적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는게 아니다.

자기가 업무 속도가 남들보다 느린 것 같다고 자청해서 늦게까지 업무에 붙어있는 분도 있고,

내가 모르는 규정을 찾아와서 알려주는 분들도 있는데다,

아예 내가 보지 못하고 지나간 걸 자기가 알아서 고쳐놓는 분들도 있다.

 

이런 분들이 모이니까 리모트라고 해도 사무실 출근하는 직원들과 굳이 차별하지 않고 나도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려고 노력하고,

무엇보다 서로 간에 믿음과 신뢰가 쌓이게 된다.

업무 구성이 바뀌면서 하실 일이 없어지게 되면 보통은 자리 정리해라고 그럴 것 같은데,

좋은 분들이니까 나도 잡고 싶어서 서로 합을 맞춰볼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저 분들이 가고 싶은 커리어가 있고, 회사에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 쪽 역량을 쌓을 수 있는 업무가 있으면 매칭해드리는거다.

 

그간 왜 이렇게 책임감 넘치는 분들을 못 뽑았을까, 그간 왜 채용 실패를 계속 겪다가 이렇게 좋은 분들을 이제서야 만난걸까, 이런 의문이 많은데,

아래의 3가지로 정리를 해 봤다.

  • 업무가 어려워서 도전적인 사람들만 남았다
  • 심사부터 빡빡하게 뽑고, 문제 있는 직원들은 쭉쭉 걸러냈다
  • 나에 대한 리스펙트를 갖고 있다

 

남은 분들이 과거 직원들의 결과물들을 보면서 바가지로 욕을 하는 경우가 너무 자주 발생한다.

그 중 한 분은 “이 정도면 진짜 월급 다 토해내라고 해도 할 말 없어. 이게 뭐야!” 이런 악담까지 하시던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나도 그런 어이없는 직원들을 뽑으면서 경험치가 쌓였기 때문에

좋은 분들로 구성된 팀을 만들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내 입장에서 만족감을 얻을 수 있게 되기까지 채용 방식도 계속 업그레이드 되었고,

직원들에게 업무를 배정하고 자체 교육이 되는 시스템도 역시 조금씩 발전되는 중이다.

항상 3달만 지나도 우리 회사는 기존 인력들이 적응 못할만큼 회사 업무 수준이 바뀐다고 농담하는데,

3달은 좀 무리라고 해도 1년 전에 우리 회사를 다니다 나간 직원들은 이제 채용 시점부터 걸러질 것이다.

그만큼 회사의 역량이 성장했다는 거겠지.

 

가장 내 입장에서 긍정적인 부분은, ‘기술직’이라고 분류되는 분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나한테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리스펙트’를 갖고 있는게 보인다.

무슨 사이비 종교 교주 할려고 하는게 아니니까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지만,

자기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능력치의 사람이 아니고, 우리 회사 업무를 하는게 자신의 지적 성장과 커리어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는걸 인지하고 있다는 걸 (최소한 겉으로는) 느낄 수 있다.

그러다보니 ‘사옥 살 때까지 달려야죠’ 라는 분들 덕분에 나도 힘을 내면서 하나라도 더 챙겨드릴려고 노력하게 된다.

 

잘라야 하는 직원, 내보내야 하는 직원

반대로 잘라야 하는 직원, 하루라도 늦게 자르면 그게 손해인 직원들도 많았다.

그만 둔 직원 중 한 명에게서 퇴사 의사가 눈에 강하게 보이던 날 보낸 메세지의 일부다.


그간 업무하는 태도가 ‘조용한 사직’이라는 표현으로 정리되는, 일종의 최소한만 하겠다는 태도로 일관해왔다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무슨 소리냐는 억하심정에 납득할 수 없어서 화가 날 수도 있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한다는 성향이 강하게 묻어나오는, 굉장히 이기적인 개발자였습니다. 하고 싶다는 언어와 프레임은 있는데, 그걸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드렸는데, 정작 회사에 도움되는 시스템으로 만들어내질 못했습니다. X개월이나 써 놓고 ‘뭐가 꼬였는지 안 되더라구요’라며 손을 놓아버렸던 XXX가 대표적인 예시겠지요. 그냥 언어나 프레임을 하나 더 배우고 싶어하는 개발자의 욕심에 불과했던 겁니다. 위의 작업 속도, 철학 등의 이슈를 제쳐놓고, 칼같이 8-5로 근무하는데 숙면 취하시는 점심시간 제외하고 화장실 있는 시간이 1일 평균 1.2 시간 정도 됩니다. 그 월급주고 뭘 더 바라냐는 반응이라면 제 답변은 위의 장문의 글입니다. 그 월급 값이라도 하셨나 묻고 싶습니다.


 

이 분은 지금까지 100명 이상의 채용 중에 빨리 내보내지 않은 것을 가장 후회하는 직원 1번이 될 가능성이 높은 분이다.

후보군이 몇 명 있어서 1등 하기 쉽지 않으시겠지만, 내가 아무리 글을 길게 쓰는 일에 큰 불편함이 없는 사람이라고해도 나가는 직원에게 1,500단어에 육박하는 장문의 불만 글을 쓰는 경우는 없었다.

후회 No.1이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이 오면 그 장문의 글을 한번 공개해보면 어떨까는 생각도 들 정도다.

언제나 이런 욕이 누워서 침뱉기라는 생각에 항상 써 놓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

보통은 직원들이 회사 욕을 써서 이미지를 망치는 걸 회사가 다 감수하는 구조겠지만, 이건 외부 공개해서 아예 한국 땅에서 구직하기 힘들게 만들어야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체로 개발에서 이런 경우가 많았는데, 코드 치면서 넷플릭스 봐도 생산성에 아무런 차이 없다고 주장하던 개발자도 있었고,

자기 깜냥으로 알고 있는 지식으로 날 무시하는 녀석도 있었다.

어이없게 날 무시하던 녀석은 동네방네 사고를 얼마나 많이 쳤는지 레퍼 체크 전화가 회사에 그간 몇 통이나 왔었다.

그나마 우리 회사가 제일 길게 다닌 회사라더군.

저 위의 No.1 후보 전에 압도적인 No.1 이었던 개발인데, 남 욕하기가 그래서 대부분은 그냥 노 코멘트 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다 어느 작은 스타트업에서 잘 모르는데 너무 불안한 말투가, 꼭 사업 처음할 때 내 생각이 났던 날은 솔직히 이야길 해 줬다.

CSS 코드 라인 하나 정리 못하던 애인데 퍼블리싱도 잘하는 풀스택 개발 경력자라고 주장하던 애라고.

 

아마 내가 No.1이니 후보니 하는 분들도 내 욕을 할 수 있는 내용들이 산더미일지 모른다.

어쩌랴. 언제나 인간 관계는 작용, 반작용이다.

 

내가 그 분들을 채용 실패라고 단언하는 것은 그 분들이 내 기준으로, 강조한다 ‘내 기준으로’, 일을 못해서가 아니다.

내가 모를 뿐, 분명히 그 분들이 잘하는 영역이 있으니까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고 누군가는 날 그렇게 무시할 수 있겠지.

문제는, 그렇게 불편하게 헤어질 것이라는 걸 첫 달부터 깨달았으면서 실행에 옮기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첫 달에 내가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회사에서 내보냈어야 한다.

 

난 그렇게 모질지 못했다. 자기 입으로 나가겠다고 할 때까지 계속 기다려줬다.

어떻게든 작은 힘이라도 모아야 되니까 조금만 더 내가 양보하자…

 

Keeper들의 공통점 – Respect & Extra mile

돌이켜보면 나도 그렇게 썩 좋은 직원은 아니었다.

항상 불만 투성이에, 일 못하는 동료랑 같이 업무 배정되면 짜증내고, 협업 안 하고, 잘난체 많이 하고, 그런 나쁜 직원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조직과 상호 교감이 잘 되어서 서로 윈-윈 구도가 갖춰졌던 적은 언제나, 예외없이, 항상, 내가 윗 사람과 동료들을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리스펙트’ 할 때 뿐이었다.

 

탄탄한 팀이 갖춰진다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동료를 믿고 보스에게 의지할 수 있는 관계.

너무 자뻑이 심한 사람이라 ‘리스펙트’라는 현금이 아니면 거래를 안 받아주는 꽉 막힌 조직 의식을 갖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꼭 조폭 사회가 아니더라도 조직을 구성하는데는 결국 돈, 지능, 경험 등등 어떤 종류로건 ‘Currency’가 있고, 그에 따라 신뢰 관계에 대한 의식이 바로 잡혀야 되는 것 같다.

 

아마 날 무시했던 ‘기술직’들은 자기가 기술을 갖고 있는 전문가고, 난 기술을 모르는 사람, 혹은 기술과 관계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들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난 그까짓거 내가 왜 하냐, 너네 같이 손 더럽히는 개발 코딩 따위의 일은 안 한다… 는 마인드였는지도 모르겠다.

참을만큼 참았다고 생각하고 해고 통지와 1달 급여를 주고 내보냈던 어느 개발자는,

자기가 하고 있다는 걸 하나하나 반박하며 아무것도 안 되어 있고,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알고 있다고 우긴다는 걸 사람들 앞에서 증명시켜 준 적이 있다.

허튼 반박하면 짓밟겠다는 생각으로 그 무렵에 개발 공부 참 많이했네ㅋㅋ

자기의 거짓말이 모조리 들통나니 엄청나게 화를 내면서 밖으로 사라졌다가 내가 없는 사이에 짐을 챙겨 나가버리던데,

그런 실패를 겪으면서도 내 사업을 해 보고 싶다고 고집스레 개발팀은 왜 뽑았을까?

그냥 나 혼자 대충 만들어서 테스트 해 보고 싶은 사업들은 널려 있었는데, 왜 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요즘 내가 ‘남겨야 하는 직원’을 찾는 방식은 오히려 간단해졌다.

위의 개발팀 다루듯이 내가 너 보다 더 많이 알고 있으니까 까불지 마라는 기싸움 따위는 안 한다.

굳이 ‘리스펙트’를 벌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가 그 구성원들을 이끌 역량이 안 된다는 뜻이다.

문제가 내게 있건, 그 구성원들에게 있건, 어느 쪽이건 상관없이 그 팀은 이미 망한 팀이다. 빨리 해체해야 한다.

 

밤 12시에 5분만에 답장해주신 지도교수님처럼, 밤 9시에 꼬인 문제 설명했더니 다음날 아침 9시에 바로 답을 주던 보스처럼,

퇴근하고 우리 게시판 곳곳에서 내가 지적하고 설명해놓은 자료들 읽으면서 염탐? 스토킹? 하며 배우려는 의지가 넘치는 리모트 직원처럼

Extra mile을 걸으며 본인의 발전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만 남기면 된다.

왜? 싸울 필요가 뭐가 있나? 인력이 그 ‘리스펙트’ 안 하는 사람 1명 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면, 그래서 성과가 계속 쭉쭉 나오면 좀 무시 당해주지 뭐. 일 잘하는데.

이 조직에서 자신이 Extra mile을 걸으면 인정해준다는, 조직에 대한 ‘리스펙트’가 있으니까 그러고 있겠지.

안 그럼 눈에 안 차는 조직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겠지?

 

조직에서 인정받기 위해 주변 동료들이 걷지 않는 Extra mile을 걷고 있으면 항상 조직이 날 인정해줬었는데,

설령 동료와 보스가 마음에 안 들어도 내가 성장하기 위해서 계속 도전해야 내가 발전한다는 마음이었는데,

그런 태도가 유지되는 인력만 남기면 된다는,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어야 마땅한 경험적 결론을 다시 한번 정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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