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급에 비해 인재가 부족한 나라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중간고사 시험이 끝나고 선생님이 총점, 평균점수를 계산해서 표로 만들어 제출해라고 시켜놓고는 교실 뒤에서 놀고 계셨는데, 50명 교실이 뭔가 좀 웅성웅성하는 분위기였다. 언제나 평균 90점만 맞추고 Q-Basic으로 뭔가 이상한걸 만드는 생각 밖에 안 했던 나는 대충 평균 91점 남짓이 되는 걸 후닥닥 계산해놓고는 또 다시 그 날 집에가서 이것저것 해볼 생각에 빠져 있었는데, 애들이 우리반 1등 앞에 막 줄을 서더라. 선생님은 친구들한테 물어서라도 제대로해서 제출해라고 그러시고, 애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고…. 아니 이게 뭐 그렇게 어려운건가?

내 앞 자리의 친구 A가 해 놓은 것을 슬쩍보니, 총 10과목 중간고사를 쳤는데 총점 400, 평균 600이라고 써 놓고는 자, 칼, 색색의 펜까지 써 가면서 예쁘게 치장을 하고 있더라. 오잉? 10과목 시험에 총점이 400점 밖에 안 됐으면 과목 평균 40점 아닌가? 그나저나 그렇게 못 쳤나?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날더러 혹시 이거 계산할 수 있냐더라. 가르쳐달라는 말인 줄 알고, 덧셈하는거랑 나눗셈하는걸 설명하고 있으니까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빨리 총점이랑 평균 계산해 달란다. 도와줄려는데 욕 먹으니 기분이 안 좋았지만, 그래도 점수 계산해서 주곤 다시 뇌내망상 속의 Q-Baisc 코드 짜는걸로 내 시선을 돌렸다.

그 친구는 내가 써 준 값을 지우개로 지우는 수준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아예 자, 칼, 형광펜을 이용해서 새로 알록달록한 제출 답안지를 만들고 있더라. 그러더니 문득 내가 계산해 준 걸 못 믿겠다면서 우리반 1등 주변에 애들이 없어지고 나니 쪼르르 거길 달려가 다시 총점, 평균 점수를 계산해 왔다.

내가 소숫점 2자리까지 계산해 반올림해서 줬는데, 우리반 1등이 1자리까지만 계산해줘서 평균 값이 다르니까 막 나한테 화를 내더라. 내가 계산이 틀렸단다.

그 친구는 점심 때나 체육시간에 축구할 때도 언제나 공 뒤만 따라다녀서 한번은 내가 짜증을 낸 적도 있는 친구다. 우측에서 공 뺏들어서 치고 올라오고 있으면 패스 받아 줄 수 있도록 공간이 텅 빈 중앙이나 좌측에서 뛰어올라와야 되는거 아니냐, 왜 공 뺏어서 뛰고 있는 내 뒤만 따라오느냐고 그랬더니, 날 더러 나 혼자만 공을 갖고 있고 싶어하는 아주 성격이 글러 먹은 놈이라고 썅욕을 하더라.

체급에 비해 인재가 부족한 나라

새벽에 잠을 깨니 우연히 30년쯤 전의 과거 일이 문득 생각이 났는데, 뭔가 요즘 내가 한국 돌아와서 겪고 있는 상황이랑 너무 비슷한 것 같다.

난 국내에서 어디 프로젝트 뛰어주고 돈 버는거, 개발 코드 베껴와서 아는 체 하는거 같은, 일반인 대상의 프로젝트에는 큰 관심이 없고, 돈 안 되는 내 사업만 머리 속에 꽉 차 있다. 가끔 뭐 해 줘야 되면 후닥닥 해 주고는 다시 내 사업으로 돌아온다.

근데, 그 뭐 해 줘야 되는걸 제대로 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지 어딘가에 줄 서서 열심히 받을려고 굽신굽신 거리고 있고, 그걸 할 줄 모르는 애들은 발표 자료 포장만 그럴 듯하게 한다. 왜 저러고 있지 싶어서 뭔가 설명을 해주겠다고 열심히 시간을 내면, ‘보나마나 수학 못한다는 소리겠지’, ‘들을 필요도 없다’ 같은 식으로 욕만 먹고, 그래도 불인인지심에 뭔가 공유해주고 나면 ‘공신력이 없다’ 같은 소리나 하면서 내 눈에는 전혀 실력없어 보이는 ‘교수’들이나 ‘회사’에 찾아가서 뭔가를 받아온다. 내가보니 내용은 다 틀렸거나, 그 분들도 바쁘니까 정말 최소치만 해서 줬다.

평소에 그 사람들한테 너네 그거 하는거 틀린거라고, 생각을 바꿔야 한다, 제대로 할려면 어떻게 해야된다라고 썰을 풀면 바로 갖다 쓸 수 있는 코드 못 만들어내면 자기한테는 아무 쓸모가 없단다. 배울 생각은 절대로 안 하고, 배운다는게 코드 베끼는거, 코드 베껴서 모으는거던데, 그거 배우는게 아니라 그냥 자료 모으는거라고 이야기해주면 화내기 시작한다. 자기 혼자만 알려고 하는 재수없는 인간, 싸가지 없는 인간이란다.

초딩 시절 그 친구와 패스 이야기 한번 한 이후로 다시는 말을 섞지 않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Data Science 교육으로 이런 사건들을 몇 번 겪고 나니 별로 의욕이 없다.

기초 수학 중에 기초만 뽑아서 학부 1~2학년 수준의 기초 위에 간단하게 돌릴 수 있는 머신러닝 교육을 했더니, 날 무시하는 인간들만 우르르 생겼고, 제대로 교육해야겠다 싶어 대학을 만들고, 남들이 몰라서 or 왜 연결되는지 이해를 잘 못해서 못 가르치고 있는 계량경제학을 기초 통계학 대체 과목으로 넣어서 하나하나 쌓아올리는 AI/Data Science 학위 과정을 만들었더니, 손해만 잔뜩 보는 교육 과정을 돈 받는다고 욕하며 이젠 날 더러 자기 혼자만 알려고 하는 얍썁한 인간이라고 하는 사람들만 우르르 생겼다. 이게 S대 같은 3류 대학이 아니라, 글로벌 S급 명문대의 고급 학위 과정이랑 비교군을 잡아야 한다는 인지가 형성되질 않고, 무슨 어디 외부 공개된 코드 복붙하는 강남IT학원들이랑 동급으로 착각하니까 터지는 불만인건가? 아니면 그냥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건가?

지난 달에 첫 학기를 막 끝낸 신입생들 중 Business track인 학생들에게 기말고사 대체 레포트로 이렇게 쓰라고 예시를 몇 개 써 줬는데, 이 정도 교육이 가능한 기관이 한국에 있냐는 식으로 자신감을 내비추면 이번엔 또 뭐라고들 비아냥 거릴까?

적을 만들지 않는 방법? 무조건 맞다고 칭찬하기? 피하기?

내게는 불인인지심의 발로였지만, 상대방에게는 ‘너 병X임’이라고 욕하는 소리로 들렸나보다.

계속 못 알아듣고 이상하게 하고, 결국 그게 나한테 피해가 되는게 요즘 한국의 AI/Data Science 업계 상황인데, 이 정도가 되니 나도 더 이상 불인인지심이 아니라 너네가 그 따위로 해서 내가 피해본다며 화도 나도, ‘너 병X임’이라는 소리도 나오게 되긴 했는데, 그냥 처음부터 엮이지 말걸…. 하는 생각이 든다. 왜 처음부터 엮였을까?

몇 달 전, 모 대학에 교수로 계시는 20년쯤 학부 선배님께 SIAI 교육 관련된 설명을 해 드렸는데, “그건 상위 1%, 아니 0.1% 정도 애들한테나 필요한거고, 나머지 99.9%는 behavior mimicking이나 하고 살텐데, 그런 지식을 따라갈 수나 있겠니?”라고 반문하시더라. “오히려 욕할껄? 자기네가 바보라는걸 인증하는 꼴인데 누가 그런거 가르친다고 좋아하겠어?”라며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시는데, 뭔가 내가 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 겪은 상황을 두 문장으로 압축 요약해주신 것 같아서 허탈함이 올라왔었다.

그 분도 해외 명문대에서 박사 공부하고 거기서 교수하다 한국에 들어와서 엄청나게 충격먹은 이야기, 나보다 20년을 더 한국에 사시면서 겪은 황당한 좌절 같은걸 하나하나 공유해주시는데, 우리나라가 진짜 인재가 없어도 너무 없다보니 이런 사람들로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그 커뮤니티가 나라의 사고 방식을 리드하고, 그런 사고 개선이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구조가 형성되지 못하고, 반대로 ‘너 잘났다 임마’라며 질투하고, 자기들이 못한다고 무시한다는 자격지심에 화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사는 형태로 진화해버렸구나는 결론을 얻게 됐다.

총점 400, 평균 600을 쓰는 애들 입장에서 평균은 40점인거 아니냐는 반문이 ‘너 병X임’이라는 소리로 들리는가보다. 자기는 우월하고 똑똑한 존재여야 하는데, 자기가 틀렸다고하니 화가 나고 자기가 멍청하다고 지적한 애가 더 멍청하다고 온갖 터무니 없는 흠집을 잡아야 자기랑 동급의 바보로 내려오는 것 같으니 좀 마음도 편해지고 그런 것 같더라.

한국에 인재가 없는 이유는 영어로 지식 습득이 안 되어서

왜 여기는 이렇게 ‘급도 안 되는 인간’들이 질투나 해서 똑똑한 사람들이 입을 다물어 버리게 만들까는 의문에 오랫동안 답을 못 찾았는데, SIAI 찾아오는 학생들을 보며 조금씩 답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우리 학생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자기의 지식 수준이 굉장히 낮은 상태, 내가 가르치는 내용이 몇 억씩 학비를 낸다고해도 입학하기 쉽지 않은 글로벌 탑 스쿨에서 가르치는 내용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상태다. 어떻게 저런 인지, 좀 더 정확하게는 자신의 수준과 고급 지식 수준의 격차, 그 고급 지식의 난이도를 인지하는 ‘메타 인지’가 생겼을까?

내가 뇌과학, 심리학 분야 전문가가 아니니 함부로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간 주워들은 연구결과를 놓고보면, 메타 인지가 형성되는 것 자체가 이미 지능 발전 단계에서 상당히 높은 단계다. ‘엄마는 왜 할머니보고 엄마라고 그래?’라고 질문하던 조카가 나이가 들면 나에게는 할머니지만 어머니에게는 어머니라는 식으로 메타 인지의 기초를 쌓는 것을 볼 수 있다. 거울을 보고 적이라고 생각하다가 거울 속의 이미지가 자신이라는 걸 깨닫는 영장류의 모습도 아마 같은 방식의 지적 발전일 것이다.

지식의 수준이 좀 더 올라오면, 지식 분야별로 계층화도 가능해지고,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 대한 인식도 구체화된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별로 겪지 않은 사람들, 즉 인지의 수준이 메타 인지의 고급화 과정을 겪지 않은 분들, 아마 못한 분들, 총점 400, 평균 600을 써 놓고는 틀린 줄은 알지만 4칙 연산부터 하나하나 가르쳐주는건 싫고 그냥 답을 빨리 알려달라고 화만 내는 분들, 빨리 코드 던져주세요 현기증 난다구요, 수학&통계학 같은거 가르칠려고 하지마 이 X식아, 그런거 몰라도 되는데 왜 재수없게 아는체 하는거야, 같은 이야기를 하는 분들은 Factor analysis 관점에서 보면 1개의 공통 Factor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지능 수준이 낮다.

그런데, 한국 귀국해서 나보다 20년을 더 겪으신 대선배님의 표현을 따르면 99%, 아니 99.9%가 그런 분들이란다. 그 분은 이미 수십년 전에 개조? 개선? 도전?을 포기하셨고, 나도 이제 같은 길을 걷게 될 것 같다. 욕만 먹는데 왜?

요즘 또 하나 드는 생각은, 한국인이 인종적으로 열등해서 메타 인지 상위 구조로 넘어가질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식 습득 자체가 대입 위주로, 특히 학원가의 쪽집게 과외 위주, 단순히 수능, 토익…. 점수 잘 받는 교육에만 초점을 맞추는 방식의 환경에 잔뜩 노출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IQ자체는 높게 나오는거 보면 단순 지능이 아니라 메타 인지, 복합 지능 등등으로 표현되는, 이른바 고급 지식 이해를 위한 사고력 훈련을 받을 수 있는 ‘뇌 근육’이 안 생긴 것이다.

사회 모든 구조가 이렇게 단순화한 쪽집게 공식, 1자리 숫자, 0/1로만 변환된 상태로 정보를 소비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인구 전체를 바보로 만드는 구조가 돌아갔기 때문인 것 같은데, 그간 이야기한대로 수능을 없애고 서술형 답안지를 내야하는 과거 본고사 구조의 시험 방식, 시험 수준도 50년 전에 수입한 해외 지식으로 쓴 교과서가 아니라 0.05년 전에 수입한 지식을 담은 논문 같은 걸 위주로 시험들이 돌아가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학원에서 뭔가 꼼수로 점수 잘 뽑아내기 위한 ‘규칙’을 찾아내기도 전에 새로운 지식들이 끊임없이 쏟아지니까?

인재 양성? 인재 채용? 나라 운영 방식?

10년 전, 연구실에만 짱 박혀 있고 옷이 다 떨어진 줄도 모르고 돌아다니던 걸 보스턴까지 구경오신 어머니가 보곤 눈물을 흘리셨던 기억이 난다. 외국 길게 살려고 하지 말고, 한국에서 좀 편하게 살자고 그러셨는데, 10년이 지난 요즘,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은 한국 들어오니 네가 배운 지식을 쓸만한 곳들이 너무 없다, 뭐 먹고 살아야 할까, 다시 해외 나가라고 해야 하나는 이야기들이다.

개발 뽑아서 그간 쓴 돈이 10억이 넘는 것 같은데, 회사에 남은 건 하나도 없고, 내가 모든 걸 다시 새로 만들면서 개발들한테 시켜서 안 됐던걸 하나하나 만드는 중인데, 당장 우리 회사 웹페이지 속도 개선된거에서 느끼겠지만, 이렇게 간단한 Scale-out 작업을 나는 주말에 잠깐 시간내서 하면 되는 걸 그렇게 몇 달씩이나 걸려가며 버벅거리고, 제대로 쿠키 맵핑을 못해서 Web 서버가 계속 바뀌는 바람에 로그인이 풀리도록 만드는 애들한테 나는 왜 월급을 줬을까는 후회가 막심하다.

다른 사업하는 중에 짬짬이 시간 내서 하는거라 Scale-out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개편 작업들이 좀 시간이 걸리니 내년 3월 정도에 공식 개편을 이야기하면 되겠다 생각하던 중에, 내가 이걸 풀 타임으로 붙어서 했었으면 1달도 안 걸렸겠다, 근데 난 도대체 몇 년동안 월급을 줬나…. 싶더라.

아마 앞으로 내가 한국에서 사업하는 동안 영원히 ‘기능직’을 뽑을 일은 없을 것이다. 일을 시키고, 업무 보고를 받고, 의사 결정을 하는 구조에 걸리는 시간, 소비되는 인건비, 관련된 조직 구성 및 부대 비용을 감안하면, 그냥 내가 하루 이틀 공부해서 해결하는게 시간 효율성, 자금 효율성, 결과물의 퀄리티 등등 모든 측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이다. 인력을 대규모로 돌리는 조직은 윗 사람이 해당 업무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을만큼 바쁠 때 일 것 같은데, 내가 그만큼 바빠지는 순간이 와도 한국에서 직원을 뽑을 게 아니라, 그냥 돈 많이 벌어서 영어권 A급 기관에 외주를 의뢰하는게 더 낫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최소한 인도에만 외주보내도 한국보다 비용이 10분 1로 줄어든다. 퀄리티는 훨씬 더 잘 뽑히는데.

애당초 한국에서 내 전문 분야인 지식 산업으로 뭔가 해 볼 수 있는 것도 없다. 돈을 쓰는 상대방을 설득하려면 그들이 내 지식을 전혀 이해를 못하니 외부의 그럴듯한 권위를 갖고와서 ‘공신력’ 포장이나 하는 사기나 쳐야되는데, 내 성격이랑도 안 맞고, 그렇게 고급 콘텐츠를 공급해줘봐야 소비가 될 것 같지도 않다. SNS를 많이 쓰는 사람들의 연봉은 낮다는 속설은 사실일까? – GIAI R&D Korea 이 글 후반부에 비슷한 경험을 하나 공유해놨는데, 그런 미팅을 할 때마다 20년 선배님이랑 닮아가는 나 자신의 자화상이 더 선명해질 뿐이다.

어쩌다보니 한국에서 돈 벌 길이 없겠다 싶어서 내가 가진 Skill-set 중에 가장 저급 스킬들을 쓰는 인터넷 언론사 or 전문분석기관들만 몇 개 만들었는데, 아마 한국어 위주의 인력을 뽑는 서비스는 저게 마지막일 것 같고, 다시는 한국어권을 대상으로 한 사업을 안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저곳들 마저도 인력 뽑기가 쉽지 않고, 애들은 자기가 내 눈 높이를 못 맞춰주니 눈치만 보는 것 같아 오히려 미안하다.

이렇게 올려놓은 공고로 그간 받은 분들 중엔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런 스펙인데도 안 되냐고 물을 만한 분들이 많았다. 국내 1등 언론사로 알려진 C일보 출신 기자부터, 행정고시 합격자도 있었고, 단순히 학벌이 좋다는 평가로 끝나는 수준이 아닌 분들, 한국 사회에서 충분히 자기가 인재라고 목에 힘 줄 수 있는 분들이 많이 있었는데, 내 기준도 아니고 우리 편집 팀 기준을 못 통과하더라. 내가 가진 Skill-set 중 가장 저급 스킬로 운영하는 조직에서도 내 눈에 차는 인재를 뽑기가 이렇게 힘들면 고급 스킬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 않겠나?

뛰어난 인재가 멱살잡고 끌고 간 조직, 그 인재가 떠난 빈 자리는?

학부 시절 외국계 증권사 가겠다는 애들이 모인 동아리를 하나 했었는데, 당시 애들 수준이 P/E, EV/EBITDA 같은 멀티플들을 Cross로 섞어서 쓰는 P/EBITDA, EV/E가 왜 잘못됐는지를 이해조차 못하는 수준이었다. 이건 선배들도 마찬가지였고, 아무도 나한테 가르쳐주질 못하는 조직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영어권에서 어릴 때 살다와서 속칭 ‘특례’인 애들이 자기네들끼리 친해지고 그 인맥으로 쉽게 외국계 증권사에 영어 잘하는 서울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취직하는 용도로 만든 동아리에서 왜 그렇게 지식을 강조하는 바보짓을 했나 후회가 든다.

그렇게 ‘특례’로 대학 들어온 애들이 ‘성골’인 조직에 나는 왜 3학기나 시간을 버리고, 나중에 회장까지 했을까? 지식 수준은 말 그대로 ‘학부 수준’인 애들이었는데…

그냥 그렇게 영어 잘한다만 갖춰도 취직 잘 되고, 네트워크 빵빵하게 쌓아서 비싼 술 마시는 접대자리나 가고, 비싼 양복이나 입고… 이렇게 돌아가는게 일상인 업계에서 나 혼자만 너 P/EBITDA라고 쓰는 심각한 병X임 이라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살았으니, 그들이 보기엔 내가 짜증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동아리원 중 하나가 내가 일본어 한다는 걸 알고 일본어로 짜증나는 사람을 뭐라고 부르냐길래 むかつく라고 한다니까, 오빠 むかつく에요 라고 했던 기억도 난다.)

한국에 교환학생 왔던 애가 그 동아리를 1학기 겪고는 탈출하듯이 자기 나라 대학으로 돌아갔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걔가 나중에 ‘Out! right! wrong!’이라고 술 기운에 외치는걸 보면서, 그렇게 다 틀려먹은 이야기를 당당하게 할 줄 아는 동아리 애들과 왜 그렇게 엮이려고 했을까 싶다.

어느 업계건 저렇게 심각한 지식 상태인 애들이 중요한 위치들에 올라가 있는 나라에서 굳이 손가락질 할 것 없이, 그래서 욕 먹을 것 없이, 나도 그냥 발을 빼는게 맞겠다 싶더라고.

한 발자국 떨어져 생각해보면, 한국은 여전히 국민소득 5천 달러 수준의 인재를 간신히 유지할 수 있는 나라인데, 이승만이라는 희대의 인재가 사회주의 확산을 막았고, 박정희라는 인재가 우격다짐으로 중화학 공업을 돌리는 나라로 뜯어고쳤고, 정주영, 이병철이라는 인재가 민간자본으로 사업이라는 것이 돌아가는 나라를 만들었고, 이건희, 정몽구라는 인재가 반도체, 자동차라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상품을 만들어 낸 걸로 운 좋게 3만 달러 수준의 나라가 되어버렸다. 그 기업들에서 받은 세금으로 정부가 간신히 해외에서 교육 받아온 고급 인재들에게 잡일이나 시키는 ‘국책 연구소’라는 걸 만들어 돌리고는 있지만, 사회 인프라나 공무원들 수준이 역시 5천 달러 수준이라 그런 고급 인재를 적절하게 활용하질 못한다. 언젠가 말했던 것처럼,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는게 아니라, 직지심체요절을 쓰는 황당한 짓만 하는 나라다.

그 시절 동아리 때도 그랬고, 요즘 회사 운영도 그렇고, 한국이라는 나라의 인재 밀집도나 돌아가는 방식을 봐도 그렇고, 몇몇 슈퍼 인재가 멱살잡고 끌어올리면, 그 인재가 에너지를 쏟는 동안은 엄청나게 대단한 조직으로 보이다가, 인재가 지쳐서, 죽어서 떠나고 나면 시차를 두고 결국엔 다른 평범한 인재들 수준으로 회귀하게 된다.

딱 저 2개 기업 조직을 제외하면 우리나라는 인재 풀의 역량만 놓고 봤을 때, 그 어떤 측면을 봐도 선진국 수준과 너무 현격하게 거리가 먼 나라다. 사실 저 2개 조직도 5천 달러짜리 애들 99.9%와 0.1%의 국민소득 100만 달러짜리 인재들을 융합시켜서 굴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사업을 한다는게, 결국 0.1%의 국민소득 100만 달러짜리 인재들에게 정말 100만 달러 연봉을 줄 수 있는 시장을 개척해야 된다는 걸 깨달았는데, 그런 매출액이 나오는 시장은 어디에 있을까? 한국에 인재가 없긴 하지만 아예 완전히 없지는 않은데, 내가 내 입맛에 맞는 인재들을 뽑으면서, 내가 주고 싶은 연봉을 줘가며 그들로 한국시장에서는 그런 매출액을 만들어 낼 자신이 없다. 여긴 우리가 만들어낸 지식 상품을 소비해 줄 수 있는 나라가 아니거든.

결국 영어에 문제없는 수준이라는 추가 조건을 갖춰야 시장 제한이라는 문제를 풀고 내가 주고 싶은 연봉을 줄 수 있을텐데, 그런 ‘다 갖춘’ 인재와 인연이 닿을 수 있을만큼 복받은 인간은 아닌 것 같다.

나라 체급에 비해 인재가 부족한 나라에서 어려운 학위 과정을 무사히 졸업했다며 SIAI 졸업생들 축하해주는 글을 쓰려다가 엉뚱한 소리만 잔뜩했네. 1기 졸업생 다섯 명, 탈 한국 수준으로 올라선 것을 축하한다.

Similar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