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성장하는 스타트업, 밀어주는 VC’ 10주 특강

가깝게 지내는 분들 중에 국내외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다들 매일매일 힘겹게 회사 키우느라 자주 볼 일은 없지만, 만날 때마다 서로 힘든거 하소연하는 대화로 툴툴 털어내는데,

그간 저와 주변에서 고생한 내용을 담아 좀 ‘실전형’으로 스타트업과 VC들 대상 강의를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Venture capital 검색어로 뽑은 강의 목록/출처=coursera.org

‘설마 그런 강의가 없었겠어?’ 라는 생각에 몇 가지 키워드로 구글링을 해 봤지만, 의외로 괜찮다 싶은 강의가 없더군요.

심지어 거의 모든 강의의 집합소가 되어버린 Coursera를 들어가봐도 제 마음에 드는 VC/스타트업 관련 강의는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강의들이 기업재무 지식을 전달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강의고,

뭐랄까, 현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처음 회사 만들고 첫 직원 월급을 줘야하던 날, 제 친구들에게 물었던 내용이

야, 4대보험이랑 세금은 원천징수 아냐? 그거 계산 어떻게 해서 줘야되지?

였는데, 대기업 재무팀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 스타트업 관계자라는 친구들이 다들 ‘세무사한테 물어봐봐’라고만 대답을 해 줬습니다.

고집 피우고 세무사를 끝까지 안 쓰는 경우도 많겠지만, 세금 신고 잘못해서 어이없는 폭탄 한번 맞고나면 바로 후회할 겁니다.

 

아이폰 앱을 만들어서 앱 스토어에 올리고 나면, 금방 사용자가 늘어난다는 방법이라며 광고를 어떻게 해야된다, 전략을 어떻게 짜야한다 등등의 수 많은 조언들은 많이 듣는데,

정작 앱 스토어에 한번 올려서 승인 심사 받는데 길게는 몇 주일이 걸리고, 이해 안 되는 이유로 거절(Reject) 당해서 끝내는 앱 스토어 계정을 새로 만들었던 이야기는 아무도 안 합니다.

왜 거절됐는지 설명도 제대로 안 해주는데, 그 짧은 글 안에 있는 내용을 이해해서 답을 찾아야 할 텐데, 아무도 모르는 암중모색을 하기 시작해야 됩니다.

고생해서 앱 만들었는데 그런거 한번 겪으면 앱 출시는 최소 1달이 늦춰집니다.

저희 회사에서 예전에 만든 아이폰 앱은 최초 기획을 포기하고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출시하는데 3달 정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승인 심사 받기 위해 기능을 많이 포기하면서 우울했던 기억, 3달 동안 손가락만 빨았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군요.

 

투자 받는데, 자기껀 뭐든지 커보이니까 기업 가치를 최대한 높게해서 투자 받으려는게 스타트업 대표들의 공통된 생각일 겁니다.

전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러다 다음 투자 못 받고 이번에 돈 넣은 사람들한테 회사 뺏긴다”라고 대답합니다.

첫 투자가 회사의 운명을 8할쯤 결정하고, 2번째 투자금으로 회사의 운명이 99% 결정된다는 표현도 자주 씁니다.

어차피 투자 받은 순간부터 남의 회사 되었다고 생각하고, Exit할 때까지 돈 넣은 사람들을 위해 죽어라 달려줘라는 표현도 자주 쓰는군요.

 

VC를 설득할려면 상품을 고도의 기술을 넣어서 잘 만들어야 되는게 아니라, VC가 설득해야되는 ‘돈 있으신’ 분들은 VC보다 더 상품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듣고 ‘우와~’ 할 만한 키워드 몇 개만 넣은 단순한 외부 검증 자료를 갖다줘야 달려든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신문사들이 그런 ‘검증’ 역할을 해 주면서 먹고 사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고, 잘 써달라고 유명 언론사 기자들한테 굽신거리는 것도 많이 봅니다.

학부 시절 대형 언론사, 통신사의 편집국장 정도 되면 ‘재경직 행시 최상위권 -> 과장 -> 국장’ 테크 탄 사람들보다 더 권력층이라는 말을 들을 때는 몰랐는데,

(참고로 1980년대 대학 다니신 선배들 표현에 따르면, 재경부 – 현 기재부 – 국장이면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력자라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언론사의 기사 한 방에 회사가 흔들거리고, 몇 번 맞으니 수습한다고 많게는 수십 억을 쓰는 걸 보면서

상품을 잘 만드는건 정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구나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스타트업을 처음 만들 때는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뭔가 만들어보고 싶은게 있으니 창업을 결심합니다.

그런데 상품 만드는 것도 손이 모자라고 시간이 없는데, 사업체가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온갖 법적 규제에 휘둘리고,

직원들 급여를 챙겨줘야되니 자존심이고 뭐고 없이 굽히는 선택을 해야되는 일이 널렸습니다.

한편으로는 사람이 (겉으로만) 착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이 (속으로는) 악독해집니다.

 

왕관을 쓰려면 무게를 견뎌야 된다고 하던가요?

스타트업 대표 자리가 왕관과 비교될 자리는 아닌 것 같긴 합니다만, 조직을 이끄는 자리는 그만큼의 책임과 역량을 필요로 한다는걸 느끼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직장의 직원으로 있을 때도 능력 부족으로 수 많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살지만,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조직의 대표가 되면 그 민폐가 더 큰 타격으로 돌아오니 아무나 대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반성하는 일이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 것 같습니다. 사업하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기 전까지는요.)

 

이런 지식을 가진 분들이 기업 가치 평가에 대한 최소 회계사 수준 이상의 설명과

인사 운영에 대해 최소 노무사 이상의 설명, 자금 운영에 대해 세무사 이상의 설명, 채용에 대해 HR 담당자 이상의 설명….

이런 강의들을 엑셀러레이터(AC), 벤처투자사(VC), 사모펀드(PEF) 같은 투자 쪽 분들, 스타트업에서 잔뼈가 굵은 C-level 분들, 그런 분들과 어울리는 전문직 분들께서 좀 해주시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근데, 경험이 넘치게 있는 분들은 많아도 강의하실 수 있는 분들을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알고 있는 걸 두서없이 20-30분 떠드는건 가능할지 몰라도, 체계적으로 구성해서 한 학기 강의를 만드는건 정말 어렵더군요.

SIAI 교육 프로그램 만들면서 왜 교수들이 15주 내내 산으로 날라다니(는 것 같)다가 폭탄 시험만 던지는지 좀 이해가 됐습니다.

강의를 만드는 사람들이 꽉 짜여있는 구조로 만들기도 힘들고, 듣는 사람이 그렇게 느끼기는 더더욱 힘듭니다.

연구실 방돌이들끼리 시험에 뭐가 나오냐는 질문 받으면 “Everything. I mean ‘EVERYTHING’.” 이런 표현을 쓰곤 했는데,

제 SIAI 교육도 학생들이 “시험 칠 때 되어서야 그게 보이던데, 수업들이 하나하나 퍼즐처럼 다 연결되어 있어서, 그냥 다~, 전부 다~ 시험에 나온다고 보면 돼요. 어디 구석에 나온 것도 다 찾아서 10문제 중에 6번, 7번 같은데 단어 하나에 숨겨서까지 출제 하시더라구요” 라고 선후배 간에 정보 공유가 되는걸 얼핏 듣고 나니 내심 미안했던 기억이 나긴 합니다.

(어렵게 만들어서 미안하긴 한데, 그렇게 퍼즐처럼 연결해서 ‘다~’ 커버하게 만드느라 정말 힘들어요ㅠㅠ)

욕을 좀 먹더라도, 한 학기 수업 시수에 꽉 채워서 알차게 교육 프로그램을, 스타트업/VC 관련해서 한번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 끝에 이 수업이 탄생했습니다.

 

이번 여름 방학 동안 10주에 걸쳐

로 구성을 해 봤습니다.

 

제가 맡을 부분이 정규 수업 10개 + Case 2개 제작 + Case 설명, 5인 Guest가 6개의 강의 (주중 7-10시 or 토요일 오후 중 택, 추후 통보), 그리고 학생들이 Case 발표하는 일정입니다.

수업시수로 치면 10주간 30시간 + 18시간 + 6시간 = 54시간 강의에, 5주, 10주차 토요일 하루 종일을 발표에 쓰는 구조가 되겠군요.

인원을 보고 결정하겠지만, 이번 5월 12일 MDSA 학회 세미나처럼 대형 세미나 장을 빌려서 종일 일정으로 진행할까 계획 중입니다.

혼자서는 케이스 다 푸는게 불가능할테니 팀을 구성해줘야할텐데, 어떻게 팀 배정을 해주느냐를 좀 고민해봐야겠군요.

현장에서 PT하면서 남의 발표도 보고, 질문도 세게 던지고, 이런저런 의견을 나누면서 이해도가 깊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이번에 Guest로 초청한 분들 중 변호사님 한 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원은 제가 학부 시절에 있었던 금융 동아리에서 만난 인연들입니다.

당시 저희는 학기 중에 총 4개의 주제에 대해 교육 자료 읽기 (1주) + 케이스 풀기 (1주) 씩을 했었습니다.

그 때 다루는 수준이나 내용이 마음에 안 들어서 동아리 회장 하던 중에 이것저것 뜯어고치려고 했었는데,

저도 지쳤고, 동아리 원들도 지친게 보였고, 결국엔 고무줄 탄성으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납니다.

취직하고 학교 놀러갈 때마다 원상복구 되는 시스템을 보며 많이 씁쓸했었는데, 15년도 더 지난 그 때의 아쉬움을 좀 극복해보고 싶습니다.

 

당시 문제의 원인은 시스템에 있었던 게 아니라, 운영하는 학생들이 그렇게 지식을 탄탄하게 갖춘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스템을 갖춰놔도 사람이 문제니 제대로 못 돌아갔고, 제가 ‘멱살잡고 끌고’ 갔어도 떠나버리니 결국 탄성력이 발동되었던거겠지요.

그나마 S대에서도 제일 자신감이 넘치는 애들이 모인 동아리가 그랬는데, 요즘 보니 대학가 동아리들 상황은 그 때와 달라진게 하나도 없더군요.

교수들이 나서서 이끌어줘야 할텐데, 제 주변 교수하는 형들이 스타트업, VC하는 사람들 속사정을 아는 경우가 있나 모르겠네요.

연구하셔야되는 분들이 굳이 이런 현실세계 잡일(?)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 때도 학교 동아리 사람들한테 많이 실망하고 대부분의 동아리 사람들이랑 인연을 끊어버렸었고,

SIAI 만들기 전에도, 만들고 나서도 국내 교육 수준에 대한 실망감은 여전히 큽니다.

위의 Guest 중 한 분은 그 무렵 같이 술 한 잔 했던 날 동아리의 교육활동 내용에 대해 “Just wrong. Outright wrong.” 이렇게 흥분하셨던 기억도 나는군요.

‘사람’이 갖춰져야 풀 수 있는 문제를 놓고 실망, 불평만 하고 있으면 사람이 갖춰질리가 없잖아요?

 

저렇게 ‘실전 전문’, ‘국내 수준 뛰어넘은 고급’ 이런 수식어가 붙을 강의를 만드는게 의미가 있을까는 고민도 많았는데,

SIAI 학생들 중에 그래도 몇 명이 살아남고, 살아남지 못한 학생들도 뭐가 잘못되고 있는지 감을 잡은 것에라도 만족한다는 표현을 쓰는걸 보면서,

한국에 여태 이런 강의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랐던거지, 기회가 주어지면 누군가는 그 기회를 잡을 것이라는 의견들에 힘을 얻었습니다.

 

강의 내용을 가늠할 수 있도록 Guest 분들께 강의하실 내용의 일부와 배경 지식을 담은 기고 글들을 부탁해놨습니다.

저도 기고까지는 아니지만, 제 스타일로 이런저런 경험담들을 정리해서 공유하겠습니다.

열정있는 분들께 저희들의 지식이 알차게 활용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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